아이브는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해도 정복하지 못한 ‘불량’ 잡기에 사활을 걸었다. 성민수 대표는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부품 등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의 정밀한 부품·제품이 생산되는데 사람이 일일이 불량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며 “앞으로 많은 기업이 앞다퉈 사람의 ‘눈’을 대신해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불량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딥러닝 머신비전 솔루션을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6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날린 일갈이다. 하지만 이듬해에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불량률은 11.8%까지 치솟았다.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휴대전화에서 불량이 계속 나오자 특단의 조치를 감행했다.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다. 1995년 3월 임직원 2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미공장에 쌓아둔 5000만 달러어치 휴대전화를 태워버렸다. 이후 불량률은 2%대로 떨어졌고, ‘품질 경영’은 한국 제조업의 자존심이 됐다.
‘품질 경영’은 한국 제조업에 ‘자동화’ 바람을 일으켰다. 대량생산라인 구축에 컴퓨터와 로봇이 본격적으로 도입됐고 막대한 자금이 투자됐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하면서 제품 기획부터 설계, 생산, 유통, 판매, 검수 등 전 과정을 통합했고 생산 과정에서 무인화와 자동화는 더 고도화됐다. 국내 스마트팩토리(스마트공장) 도입 열풍도 여기서 시작됐다.
그래도 정복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불량’이다. 공장 자동화에서 빼놓을 수 없으면서도 완벽하지 않은 분야가 불량을 잡아내는 일이다. 지금도 상당수 제조 공장에서 숙련 근로자가 육안 검사 과정에 투입돼 사투를 벌인다.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 부품 등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의 정밀한 부품·제품이 생산되는데, 그 과정에 사람이 투입돼 일일이 불량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기업들이 앞다퉈 사람의 ‘눈’을 대신해 컴퓨터가 사물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머신비전 솔루션을 도입하려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기존의 룰베이스 알고리즘 기반의 머신비전 솔루션은 사전에 입력한 ‘공식’ 범위에서만 움직입니다. 비정형적인 형상의 불량은 잡아내기 어려울뿐더러 지속적으로 룰을 설정·수정해야 하기에 안정화에만 수개월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머신비전을 도입하고도 담당 엔지니어가 상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공지능(AI)·머신비전·광학엔지니어링 기술을 한데 엮은 딥러닝 머신비전 솔루션이 필요한 이유죠.”
지난 8월 10일 경기도 수원 광교 아이브 본사에서 만난 성민수(43) 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스마트팩토리가 흔한 단어처럼 여겨지지만, 자금 때문에 아직까지 제조공정을 자동화하지 못한 공장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과거 룰베이스 알고리즘 기반의 검사 솔루션을 도입한 경우에도 비정형적인 불량을 판별하지 못하고 단순 검사나 측정에 그치는 예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수요는 공급을 쫓는 법이다. 아이브의 출발도 순조로웠다. 지난해 5월 시드 투자 유치 이후 지난 6월 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벌써 열 군데가 넘는 국내 유수 제조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양산에 들어갔거나 개념 실증(PoC) 사업에 돌입한 상태다. ‘PoC’는 개발하려는 시스템의 콘셉트가 정말 실현 가능한지 검증하는 작업으로, 고객사의 불량 시료나 이미지를 취합해 검출력을 평가하고, 검사장비 제작에 필요한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다. 이 모든 것이 창업한지 불과 1년 반 만에 거둔 성과다.
짧은 시간에 보수적인 제조기업을 파트너로 둘 수 있었던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성 대표는 연쇄창업가이자 제조업 CEO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재무 관련 업무를 하다가 스탠퍼드대학 MBA 졸업 후 글로벌컨설팅사인 보스턴 컨설팅그룹(BCG)에서 일했다. 2011년 실리콘밸리에서 모바일 디바이스의 터치스크린 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퀵소(Qeexo)의 공동 창업자로 나선 적도 있다. 부친이 설립한 자동차 부품사의 대표직을 맡아온 덕에 한국 제조업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조업과 AI 접목을 꿈꾸며 뜻을 모은 아이브의 멤버들도 검사장비, 공학 엔지니어링, SW 개발, AI 알고리즘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베테랑 엔지니어들이다. 물론 국내에서 제조기업을 위한 딥러닝 머신비전 업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관련 시장은 ‘극초기’ 상태다. 성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늘긴 늘었다. 맨눈으로 검사하는 것보다 인력 투입이 줄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불량 유형이나 비정형적인 불량에서는 검사 정확도가 떨어졌다. 작업 환경이 자주 바뀌고 발주사의 품질 기준도 한층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기준 수치가 바뀔 때마다 상주하는 엔지니어가 검사장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그렇다. 산업용 비전 검사에 딥러닝 알고리즘을 도입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한다. 검사 소프트웨어 개발과 공장 내 장비에서 돌아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만큼 현장 변수가 많은 곳이 공장이다. 머신비전 시스템 하나만 봐도 카메라, 렌즈, 센서, 조명, 소프트웨어, 프로세서 등 요소가 복잡한 데다 현장 상황이 열악한 탓에 안정화 작업에 애를 먹기도 한다. 이래도 완벽을 장담할 수 없다.
이유가 있다. 일단 육안 검사만으로는 불가능한 공정이 많다. 자동차 부품 조립 검사, 고품질 플라스틱 사출품 검사, 알루미늄·스틸 제품의 표면 검사도 품질 기준이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다.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패널 검사 공정에서는 현미경을 이용해 불량을 찾아낼 정도다. 다음으로 꼽는 이유는 역시 비용이다. 당장 머신비전을 도입해 육안 검사 공정에 있던 인력을 다른 라인에 배치하거나 줄이면 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 더 큰 문제는 불량 때문에 생기는 파급력이다.
그렇다. 난 아이브 창업자이자 제조업 경영자다. 직접 제조업을 경영하다 보니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 불량 이슈다. 아무리 자동화를 적용해도 불량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게다가 불량 제품 일부가 유출되기라도 하면 기업 이미지 손상을 피할 수 없다. 아이브의 고객 입장에서 10년 넘게 일했기에 불량을 잡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너무 커서 문제다. 관련 스타트업도 난감해한다. 딥러닝 머신비전 분야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 대다수가 ‘세계 최초’라고 부를 정도로 처음 시도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보수적인 제조업 특성상 첫 시도임에도 우리에게 완벽에 가까운 성능을 요구한다. 개념 실증에서도 이미 기대치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음에도 양산까지 가려면 추가로 검증해달라고 요구하는 곳도 많다. 그래서 처음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기업들을 설득할 때 성능 목표치를 어디에 둘지 고민이 많다. 너무 높게 잡으면 실망이 클 것이고, 너무 낮게 잡으면 아마 프로젝트 자체를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알루미늄 주조품, 조향장치 부품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사례가 있다. 알루미늄 주조품의 경우 수십명이나 되는 육안 검사자가 있는데도 불량이 계속 유출되어 로봇 팔을 연동한 장비로 외관 불량을 잡았다. 조향장치 부품은 찍힘이나 찢어짐 같은 표면 불량을 육안으로 잡기 어려웠다. 15개 외관 불량을 딥러닝으로 검출해 고객사의 불량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했다. 볼트와 너트는 분당 100개나 검수해야 해서 녹이나 변색 불량을 자주 놓쳤다. 이걸 자유낙하 방식으로 떨어뜨려 분당 100개를 검사할 수 있게 검사장비를 설계했다.
머신비전 활용도가 높은 곳이 자동차 부품과 전기·전자 분야다. 특히 기술적으로 초정밀을 요구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기·전자 분야에서 딥러닝 머신비전의 장래가 매우 밝다. 하지만 당장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제품 생산주기가 6개월 정도인 전기·전자 분야보다 5년 이상인 자동차 분야가 유리하다. 게다가 자동차 부품은 100년이 넘은 산업이라 제조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시도는 거의 다 해봤고 대응 매뉴얼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불량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분야다. 지금의 쏠림 현상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한 분야라도 제대로 뿌리내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생산 공정에서 겪는 기술적 허들을 제대로 풀어주기만 하면 시장이 획기적으로 커질 수 있다.
대다수 업체가 딥러닝 검사 알고리즘이 중심인 소프트웨어에 집중한다. 하지만 제조업 현장을 10년 넘게 지켜본 입장에서 말하면, 소프트웨어만으로는 시장 선점이 어렵다. 우리가 딥러닝 검사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고객사 생산현장에 맞춘 검사장비를 설계·제작하고, 제품 품질 데이터까지 쌓아 관리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딥러닝 검사 알고리즘이 탑재된 장비 솔루션 전체를 공급한다고 보면 된다. 사실상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자부한다.‘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능력이 강점이다.
팀 구성에만 2년이나 걸렸다. 그만큼 창업 전부터 공을 들였다. 딥테크 기업 특성상 핵심 엔지니어가 누구냐에 따라 앞으로 합류할 팀원들의 면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 아무리 제조기업 CEO라도 난데없이 딥러닝 머신비전을 한다고 하니 다니던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오겠다는 이는 없었다. 뜻밖에도 고등학교 친구인 김건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길을 열어줬다. 사업계획을 듣던 김 교수가 업계의 소문난(?) 인재를 수소문해줘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설득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았다. 딥러닝 머신비전 프로젝트를 수차례 설명하는 것은 물론 제조공장 투어도 같이 다녔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나서 합류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인재는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와야 한다.
원래 창업이 꿈이었다. 하지만 더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GE에서 일하면서 운 좋게도 GE의 재무 전문 리더십 프로그램(FMP)을 이수했고 본사의 회계감사, 컴플라이언스(법규 준수) 등의 업무를 맡으며 글로벌 기업의 활동 전반을 경험할 수 있었다. MBA를 마친 후에 컨설팅이 창업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BCG에 지원했다. 혁신이나 변화를 원하는 고객사를 위해 많은 양의 도메인 날리지(Domain Knowledge,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와 시장 트렌드를 분석하고 가설에 맞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가설이 틀리면 다시 찾고, 맞으면 세부 가설을 세워 파고드는 식이다. 하지만 결국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지는 건 기업 몫이다. 컨설팅의 한계를 느꼈고, 창업이 주는 매력은 더 크게 다가왔다. 미국 퀵소를 공동창업해보고, 한국에서 제조 관련 스타트업을 차리기에 이르렀다.
아이브를 창업한 후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힘들었다. 앞서 말한 대로 고객사에 제시할 성능 목표치를 정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애써 정한 목표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구동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쳇말로 ‘쫄리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뭐만 하면 첫 프로젝트나 다름없는데 실패하면 큰일인 상황. 테스트하는 날이면 나를 비롯해 몇몇 엔지니어는 스트레스 탓에 밥도 거르기 일쑤였다. 현장은 그만큼 변수가 많고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지금도 고객사 공장에 갈 때면 엔지니어와 꼭 동행한다.
힘든 점을 하나 더 꼽고 싶다. 사람을 찾는 일이다. 아이브에서 일한 것보다 멤버를 구성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대기업과 스타트업 운영을 퍼즐게임에 비유한 적이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도 퍼즐 조각의 차이 정도로 봤던 것 같다. 퍼즐을 완성하는 마지막 피스는 뭘까. 그는 인재라고 했다. 그 피스가 채워지면 퍼즐 판은 더 커진다고도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아이브도 AI 알고리즘 및 소프트웨어 개발, 광학 엔지니어링, 하드웨어 설계 등 전 분야에 걸쳐 공격적으로 채용에 나설 계획이다. 제조업 난제를 풀고 싶은 엔지니어라면 주저 없이 아이브의 문을 두드려달라!